[스크랩] 뉘우치고 다시 왔습니다
1813년에 체포된 한국의 순교 성인 김 아가다는 경주 감옥에서 갖은 고문을 용감히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대구 감옥으로 이송되면서 부터 마음이 약해지더니 결국 배교했습니다. 당시 사도회장으로
훗날 성인이 된 김 안드레아는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는 곧장 그녀를 만나 따뜻이 위로하며
믿음을 불어 넣었습니다. 이에 그녀는 다시금 용기를 얻어 감옥으로 향했습니다.
"혹형을 견디지 못하고 잠시 배교햇는데 그것은 하느님 앞에 큰 죄입니다. 저는 그것을 뉘우치고 다시
왔습니다. 제 목숨을 원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녀는 살점이 떨어져 나가 뼈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
매질을 당했습니다. 마침내 의식을 잃어 감옥안으로 옮겨졌으나 이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얼마후 김안드레아 역시 다른 신자들과 함께 대구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성경을 읽으며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감옥은 마치 덕을 배우는 학교와도 같았고
화목한 가정과도 같았습니다.
한순간 배교했던 아가다 성녀가 순교를 결심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공동체가 버팀목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회장을 위시한 신안 공동체는 그녀를 배교자라고 내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따뜻이 품어 안으며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복음에 따르면 토마스사도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을때 제자단은 그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을 만날때가지 인내하며 기다려주었습니다.
이렇게 참된 공동체는 상대의 불신과 베신까지도 참아 받습니다. 그럼으로써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날 개별 공동체가 버팀목이 되지는 못할 망정 걸림돌이 된다는 소식을 종종 접합니다.
상대를 위로하고 배려해주지는 못할 망정 비난하고 헐뜯어서야 되겠습니까. 내게 싫은 소리 한마디했다고
그를 내쳐버리면서 어찌 형제자매라 할 수 있겠습니까.겸손하게 낮추지는 못할 망정 자기 목소리만 크게
외쳐서야 되겟습니까. 나의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따돌리면서 어찌 공동체를 운운할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지금 여기에서 얼굴 붉히며 미워한 사람을 장차 무슨 낯으로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신앙공동체는 하느님 앞에 자기 혼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앞사람, 뒷사람, 옆사람과 모두 함께
가야 합니다. 지옥으로 들어갈 때에는 얼마든지 혼자서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결코 갈 수 없는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엠마오로 가는길에서 ; 송현신부
1. 내가 먼저 손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더러운 나의 마음이여
2. 내가 먼저 섬겨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높여주지 못하고 이렇게 고집부리고 있네
그가 먼저 섬겨 주길 원했고 그가 먼저 이해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높여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추악한 나의 욕심이여 오 서글픈 나의 자존심이여
왜 내가 먼저 져줄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며 서 있네
어찌 할수 없는 이마음을 주님께 맡긴 채로